제 741 호 커피, 시대를 반영하다
커피, 시대를 반영하다
“커피나 마시러 가자”는 식사를 마치고 나서 10번 중 9번은 나오는 말이다. 10m만 걸어도 카페 2~3개는 무조건 볼 수 있는 나라는 한국 말고는 몇 없을 것이다. 한국은 커피 소비량은 세계 2위, 1인당 커피 소비량이 1년에 400잔이 넘어선다. 현대인의 삶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가 된 커피, 그 역사와 커피의 이모저모를 알아본다.
커피는 어디서부터?
커피의 기원은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지만 두 개의 ‘설’이 전해진다. 에티오피아의 목동 칼디 설과 이슬람 사제 오마르 설이다. 에티오피아 기원 ‘설’에 따르면, 에티오피아의 목동 칼디(Kaldi)가 염소들이 붉은 열매를 먹고 활력을 되찾는 것을 보고 커피를 처음 발견했다고 한다. 열매를 먹고 활력이 솟구치는 기분이 들자 인근 수도원에 알렸으나 이것이 악마의 열매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불 속에 던져버렸다. 여기서 커피가 탄생하는데, 열매가 불에 타면서 향기로운 냄새를 내기 시작했고 이것을 수거하여 음료를 만든 것이 커피라는 것이다.
오마르 설은 칼디 유래 설보다 늦은 약 1258년 경의 이야기이다. 사람들의 병을 고치던 이슬람 사제 오마르는 공주와 사랑에 빠져 사막으로 유배를 가게 되었는데 그곳에서 우연히 발견한 빨간 열매가 커피였다. 이 열매를 먹고 피로가 가시는 것을 느꼈고 이 열매로 많은 병자들을 치료했다고 한다. 이후 면죄를 받아 커피를 널리 알렸다고 전해진다.
한국 커피 문화의 변천
한국에 커피가 처음 전해진 시기는 19세기 말로, 1896년 아관파천 당시 고종 황제가 러시아 공사관에서 커피를 처음 마신 것이 그 시작이다. 이후 궁으로 돌아온 고종은 덕수궁 내에 ‘정관헌’이라는 최초의 서양식 건물을 짓고 그곳에서 신하들과 함께 커피를 마시고 다과를 즐겼다. 신기한 것은 당시 커피는 네모난 설탕 덩어리 속에 커피 가루가 들어 있는 형태였다. 커피가 대중에게 본격적으로 알려진 것은 20세기 들어서이다.
우리나라에 커피를 파는 ‘다방’이라는 것이 최초로 들어선 곳은 한국 최초의 호텔인 대불호텔이었다고 추정된다. 1927년에는 ‘제비다방’이라는 곳도 생겼는데, 이곳은 학창 시절 국어 시간에 자주 보았던 소설가 이상이 운영했던 다방이다. 이 다방에서는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을 쓴 박태원을 비롯 많은 작가들이 문학적 영감을 받았던 곳이다. 1930년대에 들어서면서 커피는 예술가와 문학가들이 모이는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다방이 당대의 지식인과 예술가들이 모여 문예 활동을 펼치는 사교의 장으로, 음료를 마시는 곳을 넘어, 사상과 예술을 논하는 공간으로 자리매김했다.
한국 전쟁 이후 1950년대부터 다방은 3000개가 넘었으며, 미군이 거주하면서 국내에 유입된 미국식 인스턴트 커피의 영향으로 인기 장소가 되었다. 당시 ‘미제’ 상품에 대한 동경이 있었고, 인스턴트 커피는 편리함과 미국식 문화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다방에서는 주로 인스턴트 커피를 설탕과 분말 크림을 넣어 제공했는데, 이는 이후 한국식 ‘커피 믹스’의 원형이 되었다. 1976년 동서식품에서 3-in-1 커피 믹스를 세계 최초로 개발하면서 그야말로 ‘히트’를 쳤고, 지금은 전 세계적으로도 인기 있는 제품이 되었다.
1990년대는 스타벅스와 같은 국제 브랜드가 등장하며 커피 문화가 급변했다. 1999년 이화여대 앞에 첫 매장을 연 스타벅스는 커피 문화를 만든 브랜드였다. 당시 스타벅스에서는 해외 유학을 다녀온 온 사람들이 ‘작은’ 에스프레소 잔을 들고 먹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었다고 한다. 타 카페에 비해 비싼 가격에도 불구하고 스타벅스의 커피를 먹는 것만으로도 시대를 향유하는 느낌이 들었던 시기이다. 이때부터 카페 인테리어와 서구식 커피 메뉴가 주목받았고, 사람들의 모임 장소로서 카페 문화가 촉발되었다. 또한, ‘테이크아웃’이라는 개념이 생겨나면서 ‘빠름’을 추구하는 한국의 도시 생활에 적합한 소비 트렌드를 만들어 냈다.
▲ 한국 스타벅스 이화여대 1호점 당시 모습 (출처: https://n.news.naver.com/article/366/0000110619)
2000년대 들어 한국의 커피산업은 급성장했고 현재는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커피 소비국으로 자리매김했다. 다양한 스페셜티 커피 전문점들이 등장하면서 커피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으며, 커피를 즐기는 방식 또한 한층 세분화되었다.
환경보호와 메타버스로 소통하는 커피
커피의 소비가 증가함에 따라 이제 한국 커피 산업은 사회적 가치와 환경 보호에도 동참 하고 있다. ‘환경 보호’라고 하면 종이 빨대나 텀블러 사용하기 등을 생각하지만 공급 측면에서는 공정 무역 원두를 사용하고 커피 찌꺼기를 재활용해 비료로 사용하는 친환경 프로그램이 주목받고 있다. 스타벅스와 탐앤탐스 같은 주요 브랜드뿐 아니라 소규모 카페까지도 공정 무역과 유기농 원두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공정 무역 커피는 생산지의 농부들에게 공정한 대가를 지불하고 친환경 농법을 통해 생태계를 보호하며 재배된 커피를 의미하는데, 소비자들도 윤리적 소비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이런 카페들을 찾는 경향이 증가하고 있다.
제주도에서는 커피 찌꺼기를 활용해 농업에 기여하려는 프로젝트도 등장했다. 커피 찌꺼기를 사용해 ‘커피 토양’을 만들어 농작물 재배에 활용하는 것인데, 이를 통해 폐기물을 줄이고 농업에도 기여하는 순환 경제를 구현할 수 있기에 신선한 방법으로 주목받고 있다.
최근에는 커피 브랜드들이 가상 카페를 개설하거나 커피와 관련된 활동을 메타버스 공간에서 제공함으로써 고객과 새로운 방식으로 소통하고 있다. 이는 MZ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카페 아바타를 통해 가상 공간에서 커피를 주문하고 커피 퀴즈와 같은 다양한 활동에 참여하도록 유도하면서 브랜드와의 친밀도를 쌓고 있다. 일부 커피 브랜드와 로스터리 카페는 메타버스에서 커피와 관련된 교육을 진행하기도 함다. 커피에 관심이 많은 요즘 소비자들에게 로스팅 과정을 직접 체험하는 듯한 콘텐츠를 제공하는 것이다. 이는 기존의 커피 마케팅에서 벗어나 트렌드에 발맞춘 혁신적인 수단으로 보인다.
오늘날 커피 문화는 단순히 소비 차원을 넘어서 문화와 사회, 환경을 아우르는 산업으로 자리매김했다. 커피는 한국이 사회경제적으로 발전하는 동안 같이 성장해 온 만큼 단순한 음료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지는 문화의 역사이다.
이윤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