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명대학교박물관 유물을 만나다 (80) 백자청화매죽문잔
- 작성자 학예사
- 작성일 2019-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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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화백자는 백토로 기형을 만들고, 코발트 안료로 그림을 그린 뒤 유약을 발라 구워낸 것이다. 이 청화백자는 중국 원대(元代)에 처음 제작되었으며, 조선 세조 3년(1457년)에 회회청(回回靑)이라 불리는 코발트 안료가 중국에서 수입된 뒤부터 우리나라에서도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세조 11년(1465년)에 최초로 청화백자를 생산했다는 기록이 《세조실록》에 있다. 또한, 조선의 문신인 성현(成俔, 1439~1504년)의 《용재총화: 慵齋叢話》에는 세조 때 중국에서 회회청을 구하여 중국자기의 양식을 모방한 청화백자를 만들었다고 씌어 있다.
페르시아가 원산지인 코발트 안료는 중국을 거쳐 조선으로 수입되었기에 매우 귀하고 비쌌다. 따라서 15세기 청화백자는 왕실의 전유물이 되었다. 청화백자의 생산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으로 거의 중단되었다가 17세기 후반에 다시 단순한 무늬의 청화백자가 생산, 보급되었다. 이때에는 왕실뿐만 아니라 문인 사대부 등 지식층도 청화백자를 사용할 수 있었다. 종류와 형태가 다양해지고, 생산량도 늘어나서 꽃병, 연적, 필통, 술병 등으로 실생활에 널리 쓰이게 되었다.
위 사진의 유물은 백자청화매죽문잔(白磁靑彩梅竹紋盞)인데, 기형은 굽에서 점차 둥글게 넓어지면서 동체를 이루고 거의 수직으로 구연부까지 올라간다. 동체의 외부 전면에 걸쳐 매화와 대나무 무늬가 청화안료로 그려져 있다. 유약은 전면에 고르게 발랐으며, 유색은 청백색을 띤다. 이 유물은 현재 우리 학교 박물관 상설 전시실에 있다.